[임광명의 정견만리(正見萬理)] 군인의 명예

임광명 논설위원 kmyim@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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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위원

군인이 꼭 가져야 할 가치
자기 안위 위한 굴종 대신
원칙 지키는 결기 있어야

‘채 상병 사건’ 잇단 의혹
장성들도 침묵 안타까워
생명 같은 명예 지켜내길

헥토르는 자신이 이길 수 없음을 알았다. 상대는 신의 유전자를 물려받은 자. 천하의 그 누구도 따라갈 수 없는 절대 무(武)를 자랑하는 자. 바로 그리스 군의 선봉장, 아킬레우스였다. 하지만 헥토르는 그 무시무시한 아킬레우스를 상대로 정면대결에 나섰다. 조국 트로이를 지켜야 하는 전사로서 임무를 다 하고자 한 것이다. 이미 승패를 짐작했던 헥토르는 제안했다. 패한 자의 시신만은 온전히 상대측에 돌려주자고. 그러나 아킬레우스는 거부했다. 동료 잃은 복수심에 불타던 아킬레우스는, 당연하게도, 헥토르를 쓰러뜨리고 그 시신을 능욕했다.

호메로스의 서사시 〈일리아스〉가 전하는 이야기다. 자, 둘 중 전사로서의 명예는 과연 누구에게로 돌아갔을까. 이긴 아킬레우스인가 진 헥토르인가. 신은 헥토르의 손을 들어줬다. 전사는 어느 경우에서든 반드시 지켜야 할 규범이란 게 있는데, 아킬레우스는 그 규범을 어겼기 때문이다. 아킬레우스는 결국 신의 처벌을 피하지 못했다.

전사는 곧 군인이다. 군인,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다. 각 잡힌 제복, 빛나는 훈장, 절도 있는 걸음걸이, 흐트러짐 없는 몸가짐 따위다. 그런 군인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경외심이 절로 우러난다. 그러나 진정한 군인에겐 겉모양이 다가 아닐 테다. 군인으로서 반드시 가져야 할 규범이자 가치가 있다. 다름 아닌 명예다. 무공이 제아무리 높아도 스스로 명예롭지 못하면 참군인이라 할 수 없다. 아킬레우스가 그랬던 것처럼.

“군인은 명예를 존중하고 투철한 충성심, 진정한 용기, 필승의 신념, 임전무퇴의 기상을 견지하며 죽음을 무릅쓰고 책임을 완수하는 숭고한 애국애족의 정신을 그 바탕으로 삼는다.” ‘군인복무규율’이 명시하고 있는 군인의 자세다. 제1의 규범이 명예를 존중하는 것이다. 명예는 자기가 지키는 것이지 남이 주는 것이 아니다. 양심에 비춰 당당하게 행동하고 스스로 부여하는 도덕적 가치다. 죽음이 뻔히 눈앞에 보이는데도 아무런 조건 없이 전장으로 향하는, 군인의 존재 이유이기도 한, 그 비장한 결단은 목숨보다 명예가 더 중하기에 가능한 것이다.

군인의 명예는 국가와 국민을 향해 있을 때 비로소 가치를 갖는다. 그렇다면 명예는 굴종과 함께 어울릴 수 없다. 굴종은 비굴한 순종이다. 명령에 죽고 명령에 사는 것이 군인의 숙명이라지만, 그 명령이 부당한 것이라면 목숨을 걸고라도 반대의 뜻을 분명히 밝히는 결기 또한 군인의 참모습이다. 진정한 명예는 바로 그런 것이다. 대의를 위해 개인적 희생을 감수하는 결연한 삶에서 명예는 빛을 발한다. 소신을 저버리지 않고 원칙을 지키는 것, 자신과 타인에 속임이 없는 것이다. 제 안위를 지키고자 굴종하는 건 군인의 명예가 아니다. 권력의 눈치나 보는 군인, 그러면서도 창피한 줄 모르고 어쩔 수 없었다고 변명하는 군인을 경외할 수는 없다.

말이 길고 번거로운 건 이른바 ‘해병대 채 상병 사망 사건’을 둘러싸고 보이는 일부 군인과 군 출신 인사들의 명예롭지 못한 행태가 안타까워서다.

이 사건에 대해 공수처 수사가 현재 진행되고 있고 국회에선 관련 특검법까지 통과된 상태다. 시간이 지나면서 사건의 윤곽이 조금씩 드러나는 형편이다. 하지만 여러 의혹에 책임 있는 해명을 내놓아야 할 인사들은 사건이 일어난 지 10개월이 다 돼가는 지금까지 별다른 말이 없다. 심지어 장군의 반열에까지 오른 이들까지 변명 또는 침묵으로 일관할 뿐이다. 그들에게서 생명보다 무겁다는 군인으로서의 명예는 찾아지지 않는다.

30여 년을 복무한 어느 부사관의 회한을 대신해 가수 김민기가 전하는 노래가 있다. ‘늙은 군인의 노래’다. 태어나 이 강산에 군인이 된 그 부사관은 아들과 딸에게 당부한다. 서러워 말 것이며, 좋은 옷도 탐하지 말고 맛난 것도 탐하지 말라고. 왜 그래야 하는가. 바로 자랑스러운 군인의 자식이기 때문이다. 흘러가 다시 못 올 청춘을 푸른 군복 입은 채 보냈지만, 그는 스스로 자랑스러웠던 것이다. 구국의 결단을 한 것도, 엄청난 무공을 세운 것도 아니지만, 짐작건대 군인으로서 명예를 지켰다는 자부심을 그는 끝까지 놓지 않았던 것이다.

늙은 군인만이 아니다. 젊은 육사 생도들은 하루도 빠짐없이 ‘사관생도 신조’를 외친다. “하나, 우리는 국가와 민족을 위하여 생명을 바친다. 둘, 우리는 언제나 명예와 신의 속에 산다. 셋, 우리는 안일한 불의의 길보다 험난한 정의의 길을 택한다.” 해병대 채 상병 사망 사건에 눈 감고 귀 막고 입 닫은 군인들, 부끄럽지 않은가.


임광명 논설위원 kmyim@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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