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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애플·테슬라가 욕먹는 이유
애플은 최초의 대중적 스마트폰 아이폰을 만든 기업으로 글로벌 시총 1~2위를 넘나들고 있다. 고인이 된 스티브 잡스가 CEO(최고경영자)였을때 애플은 아이폰 덕분에 ‘혁신의 아이콘’으로 불렸다.
아이폰은 국내에선 젊은층에 유독 인기가 높다. 지난해 갤럽조사에 의하면 18~29세에서 65%라는 엄청난 점유율을 보였다. 2013년만 해도 25%이던 것이 3배가량 뛴 것이다. 삼성 갤럭시가 70% 안팎, 애플이 20%대를 각각 기록하고 있는 것과 비교하면 이들 세대의 점유율은 어마어마한 수치다.
아이들에게 “왜 아이폰이 좋으냐”고 물어보면 “디자인이 갤럭시보다 예쁘고 사진도 잘 나온다”, “다른 기기랑 호환이 쉽다”고 답한다. 심지어 “갤럭시를 쓰면 왕따 당한다”며 아이폰이 친구 무리를 묶는 매개체가 되기도 한다.
아이들에게 이렇게 인기 있는 애플이지만 사회공헌활동이나 법인세로 들어가보면 좀 다른 모습이 나온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애플코리아가 지난해 9월 발표한 감사보고서에서 2022년 매출은 7조 5240억 원에 영업이익 5599억 원이었다. 다만 기부금은 감사보고서 항목에 표시되지 않았다. 기부금 항목이 없는 것을 두고 업계에선 액수가 적거나 없기 때문이라고 보고 있다.
비슷한 외국계 IT기업들의 공시를 보면 기부금에서 페이스북코리아는 2022년 1억 8000만 원에서 지난해는 한 푼도 내지 않았고, 한국마이크로소프트(MS)와 구글코리아는 지난해 각각 7677만 원, 5000만 원을 냈다.
1988년 국내 시장에 진출한 애플코리아는 감사보고서에 기부액을 표기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2009년 매출, 자산 규모와 상관없이 외부감사를 받지 않는 유한회사로 전환하면서 막대한 수익을 감추려는 것이라는 비난까지 샀다. 그러다가 2020년부터 유한회사에도 공시 의무가 발생하면서 매출, 영업이익, 기부금 등이 드러났다.
애플코리아는 납부 법인세가 적정한가에 대한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애플코리아는 2022년 법인세 503억 원을 냈는데, 매출원가(생산원가)를 약 90% 수준으로 높게 책정해 영업이익과 그에 따른 법인세를 적게 낸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다.
공교롭게도 스티브 잡스도 생전에 기부에 인색하다는 지적을 받았다. 억만장자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지만 100만 달러 이상 기부자 명단에는 없었고 전에 있었던 애플의 자선프로그램도 폐지했다. 고인이 된 삼성그룹 이병철 창업자와 이건희 회장이 보여줬던 기부 활동과는 대비되는 모습이다.
장거리 전기차와 상업용 우주선 등으로 유명한 테슬라도 국내 시장에서 욕을 많이 먹고 있다. 테슬라코리아는 지난해 매출 1조 1437억 원에 171억 원의 영업이익을 냈지만 기부금 내역 자체가 없다. 2022년에도 기부금 항목이 없었다.
자동차 업계 내에서 이와 비슷한 매출을 내는 볼보차코리아의 경우 2022년 8억 원, 지난해 12억 원의 기부금을 냈고 사회공헌활동도 꾸준하다.
또한 테슬라코리아는 차값을 수시로 올렸다내렸다 하는 바람에 ‘고무줄 차값’으로도 유명하다. 1년새 차값이 3000만~4000만 원 오르내리기도 한다. 일부에선 “차값이 횟집처럼 시세냐”는 얘기까지 나온다. 2016년 한국시장 진출후 올해는 수입차 판매 3위를 기록하고 있지만 아직도 한국수입차협회 회원사가 아니다.
국내 진출한 일부 명품 브랜드들도 이들 못지않다. 프랑스 디올은 지난해 국내에서 1조 원이 넘는 매출을 기록했지만 기부금은 1920만 원에 불과했다. 루이비통은 2020년 이후 지난해까지 기부금을 한 푼도 내지 않았다. 시계 브랜드 롤렉스도 지난해 국내에서 2944억 원의 매출을 내고도 100만 원만 기부했다. 혁신의 아이콘, 명품 브랜드의 실상은 ‘돈만 좇는’ 외국기업이다.
반면 BMW그룹코리아와 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 일본 화학회사 도레이 등은 외국기업의 모범사례로 꼽힌다. 지속적인 투자와 고용창출은 물론이고 기부 등 다양한 사회공헌활동을 펼치고 있어서다. BMW의 경우 고객들을 위한 전용 드라이빙센터와 LPGA챔피언십, R&D(연구개발)·물류센터 건립 등 한국회사 못지않은 활동을 하고 있다.
제품을 구매하는 것은 개인의 자율적 판단이다. 기부금이나 법인세, 사회공헌 활동은 구매시 고려 대상이 아니다. 하지만 한번쯤은 내가 사용하는 제품의 우리 사회 기여도도 생각해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싶다. 기업은 이윤추구를 목적으로 하는 집단이지만 한편으로는 사회 일원으로서의 책임도 따른다. 글로벌 최고 기업임을 내세우지 말고 기업시민으로서의 혁신과 명성에 걸맞은 자세도 갖췄으면 하는 바람이다.
배동진 서울경제부장 djbae@busan.com
2024-05-08 [1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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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핵개인의 시대, 가족의 의미는
시대의 흐름에 뒤처지면 안 된다는 직업적 강박 때문일까. 먼지 쌓인 책장을 정리하다 보니 제목에 ‘시대’가 들어가는 책이 유난히 많다. 〈과부하시대〉 〈가녀장의 시대〉 〈시대예보: 핵개인의 시대〉 〈고립의 시대〉 등등. 물론 ‘과부하시대’를 사는 현대인답게 모든 책은 한두 챕터씩 띄엄띄엄 읽다 말다 한다. 완독의 길은 점점 더 멀고도 험해진다. 오롯이 한두 시간 정도의 집중력을 유지할 수 있는 곳은 이제 공연장과 영화관 정도밖에 남지 않았다. 업무 관련 ‘카톡’이 끊임없이 울리고, 중독성 강한 콘텐츠가 무한정 제공되는 스마트폰을 강제로나마 끌 수 있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그렇잖아도 정신 없는 와중에 각종 기념일이 몰려 있어 직장인들의 허리가 휜다는 5월이 왔다. 치솟는 물가 탓에 5월은 ‘가정의 달’이 아니라 ‘가난의 달’이라는 푸념 섞인 이야기마저 나온다. 가정을 꾸리거나 아이를 낳는 일이 갈수록 어려워지는 세태 속에 출생률은 해마다 최저 기록을 다시 쓴다.
그럼에도 가족의 의미를 되새겨 보라는 가정의 달을 맞아 소설 〈가녀장의 시대〉를 다시 펼쳐본다. 주인공 30대 여성은 ‘모부’(작가는 익숙한 한자어의 순서마저도 부모가 아니라 모부로 뒤집어 놓았다)를 직원으로 고용한 출판사 대표이자 그들의 생계를 책임지는 ‘가녀장’이다. 작가 이슬아는 ‘아비 부’의 자리에 ‘계집 녀’를 적자 흥미로운 질서들이 생겨났다고 썼다. 가부장을 뛰어넘은 새로운 가녀장 체제에서 돌봄과 살림을 공짜로 제공하던 엄마들의 시대는 막을 내린다. 주인공은 1년간 먹을 주요 식재료인 된장을 담그기 위해 외가로 세 번의 ‘출장’을 떠나는 엄마에게 출장 수당을 지급한다. 가부장이었던 할아버지처럼 엄마의 가사 노동을 공짜로 여기지 않는 것이다. 그가 도저히 해낼 수 없는 집밥의 가치를 충분히 인정해 보너스를 입금한다.
월급도 엄마가 아빠보다 배로 받는다. “엄마의 노동이 아빠의 노동보다 대체 불가하기 때문”이라는 가녀장의 말에도 아빠는 불만이 없다. 하이브 소속 레이블 어도어의 민희진 대표가 외친 ‘개저씨’라는 혐오 표현이 최근 화제가 되는 것과 대조적으로, 그의 아버지는 ‘아름다운 아저씨’로 그려진다. 딸이 가족 서열의 정점에 있기에 모부의 방은 지하에 있다. 영화 ‘기생충’을 연상시키는 기묘한 그림이다. 드라마로도 제작된다는 이 유쾌한 소설이 어떤 반응을 얻을지 궁금해진다.
가부장제도 아이 울음 소리도 희미해져 가는 가운데 1인 가구는 급증했다. 행정안전부 인구통계에 따르면 지난달 기준 전국 1인 가구는 1003만 9114세대로, 전체의 41.8%에 달한다. 열 가구 중 네 가구 이상이 나 혼자 사는 셈이다. 부산의 경우 20대 여성의 1인 가구 증가율이 특히 높다. 2019년 3만 7469명이던 20대 여성 1인 가구는 2022년 4만 8996명으로, 3년 사이 30% 이상 늘었다. 젊은 세대의 결혼에 대한 인식이 바뀌었다는 점이 주요 원인(부산일보 3월 8일 자 8면 보도)으로 꼽힌다.
이처럼 ‘핵가구의 시대’를 넘어 ‘핵개인의 시대’가 왔는데도 비혼이나 동거, 동성 결혼, 비혈연 가구 등 다양한 삶의 방식에 대한 불편한 시선이나 편견은 여전하다. 〈시대예보: 핵개인의 시대〉에서 저자 송길영은 “오랫동안 우리들의 머릿속을 지배해 온 것이 지금은 불편한 단어로 인식하는 ‘정상 가정’이라는 환상”이라고 꼬집었다. 이 모습에서 벗어난 형태를 ‘결손 가정’이라는 폭력적인 표현으로 부르던 때가 있었던 것도 지적한다. 그는 프랑스의 혼외 출생자 비율이 전체의 60%가 넘는다는 점을 들어 “정책이 출생률을 높이기 위해 결혼을 장려하는 방향으로만 일원화한다면 결과는 나아지기 어렵다”며 확장된 가족의 의미를 제시하기도 했다.
국내 동성 부부 최초로 지난해 아기를 출산해 화제가 된 김규진·김세연 씨. 이들은 얼마 전 한 잡지와의 인터뷰에서 ‘가족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혈연이 중요하지 않다”며 “서로 사랑하고, 내가 가족이라고 생각하면 가족”이라고 답했다. 이들은 임신을 위해 국내에서 정자 제공을 받는 것도 고려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법적 부부나 사실혼 이성애 부부에게만 정자를 제공해 포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단순히 결혼과 출산을 하고 가정을 이룬다고 해서 더 이상 외롭지 않다거나 행복이 보장되는 것도 아니다. 영국의 경제학자 노리나 허츠는 저서 〈고립의 시대〉에서 “휴대전화에 빠진 파트너 때문에 결혼 생활 상담사들에게 외로움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급격히 늘었다”며 스마트폰과 소셜 미디어가 의사소통하는 능력을 갉아먹는 세태를 짚기도 했다. 현재 당신이 생각하는 가족은 과연 어떤 모습인가. 다양해진 가족의 형태와 핵개인의 삶을 포용할 수 있는 사회적 제도와 정책을 고민해 봐야 할 때다.
이자영 사회부 차장 2young@busan.com
2024-05-06 [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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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실험실 고양이' 된 용산 참모들
제2차 세계대전을 앞둔 1935년. 오스트리아 물리학자 에르빈 슈뢰딩거(Erwin Schrodinger, 1887~1961)는 양자역학의 불완전성을 증명한다면서 독특한 ‘사고(思考) 실험’을 했다. 역사상 가장 위대한 이론물리학자인 알베트 아인슈타인도 이 문제로 슈뢰딩거와 수차례 편지를 주고받았다고 하니 당시에도 반향이 대단했다.
실험은 단순하다. △고양이 한 마리 △미량의 방사성 원소 △방사성이 붕괴되면 깨지는 독극물병을 동시에 밀폐된 금속상자에 넣어둔다. 방사선 원소의 양은 아주 적어서 1시간 동안에 붕괴할 확률과 붕괴하지 않을 확률이 각각 50%이다. 1시간이 지난 뒤 상자 안의 고양이는 어떤 상태일까.
현실에서라면 고양이의 상태는 죽었거나 아니면 살았거나 둘 중 하나다. 하지만 양자역학에서는 죽은 고양이와 살아 있는 고양이가 동시에 존재하는 ‘중첩의 상태’로 계산된다.
다소 엉뚱한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요즘 대통령실 고위 참모들이 ‘슈뢰딩거의 고양이’ 같아 보여서다.
4·10 총선에서 여당이 참패한 다음 날 비서실장을 비롯한 수석급 이상 참모진이 모두 사의를 표명했다. 정책실장, 정무수석, 홍보수석, 경제수석, 사회수석 등이다. 그 후 20일이 지났는데 정진석 비서실장과 홍철호 정무수석이 새로 임명됐을 뿐, 나머지 인사들의 거취에 대해서는 가타부타 언급이 없다.
들리는 이야기로는 윤석열 대통령이 해당 참모들에게 “사의 반려는 없다”고 말했다고 한다. 사표를 돌려받지 못했다면 해임된 것이다. 하지만 이들은 여전히 대통령을 열심히 보좌하고 있다. 그렇다고 유임됐다는 이야기도 듣지 못했다.
대통령실의 한 인사는 이렇게 해석했다. 윤 대통령이 참모들을 계속 신뢰하면서도, 언제든 그만두게 할 수 있다는 ‘중의적’(重義的) 메시지를 내놓은 것이라고. 그럼으로써 조직에 긴장과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는 친절한 설명도 곁들였다.
또다른 전언으로는 윤 대통령이 “내 책상 안에 있으면 반려지, 굳이 반려해야 하느냐”고 말했다고도 한다. 사의를 밝혔는데 대통령의 재가가 없으니 그만둘 수도 없고, 그렇다고 명시적으로 유임을 언질받은 것도 아닌 애매모호한 처지인 것이다. 마치 ‘슈뢰딩거의 고양이’처럼 살아있는 상태와 죽어있는 상태가 중첩됐다고나 할까.
이들이 모두 ‘정무직’이기 때문에 행정 절차상의 사표 수리 또는 반려 여부가 중요한 것은 아니라는 논리를 내세우기도 한다. 평소라면 맞는 말이다.
하지만 대통령은 취임 후 가장 큰 위기를 맞았다. 그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수단으로 고위 참모들이 일괄 사의라는 ‘정치 행위’를 한 것이다. 국민들은 이런 모습을 국정 쇄신의 과정으로 받아들였고, 어떻게 결론을 낼지 겉으로는 별 관심이 없는 듯 하면서도 매섭게 지켜보고 있다.
국민들은 지금 어느 수석이 유임되고, 어느 참모가 그만두느냐에는 크게 관심이 없다. 국정쇄신을 한다면서 고위직들이 모두 사의를 밝혔으면 그 인적개편의 결과는 어떤 식으로든 투명하게 알려줘야 한다는 것이다. 총선 이후 윤 대통령이 입에 침이 마르도록 강조했던 소통이 바로 그런 것이다.
쇄신한다고 했으니 모조리 사표를 수리하라는 것도 아니다. 다만 그 결과를 공유할 때 대통령과 국민들의 진정한 소통이 가까워진다는 것이다. 앞으로 더 열심히 일하라며 사표를 반려하든지, 아니면 사람을 바꿔 분위기를 일신하든지 분명한 모습을 보이는 것이 국민들에 대한 예의다.
대통령실은 사의를 표명한 참모들의 거취에는 입을 닫으면서 전임 비서실장의 퇴임식 모습은 조목조목 알렸다. 대변인실은 “대통령은 떠나는 비서실장을 청사 밖 차량까지 배웅했다. 비서실장이 타는 차량의 문을 직접 열고 닫아주며 차가 멀어질 때까지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고 서면브리핑까지 했다.
고생한 참모를 마지막까지 배려하는 대통령의 모습은 감동적이다. 대통령실은 윤 대통령의 따뜻한 마음이 국민들에게 아름답게 비쳐지길 바랄 것이다. 하지만 상대방이 궁금해하는 걸 알려주는게 소통이다. 자랑하고 싶은 걸 떠벌리는 건 그냥 홍보다.
국민들이 진짜 알고 싶은 건 국정쇄신이 어떤 모습으로 진행되는지, 쇄신의 일부분인 인적개편은 어떻게 매듭짓는지이다. 출입기자 입장에서도 대통령이 끓여주는 김치찌개를 먹는 것보다는 이런 궁금증 해소가 우선이다.
2024-05-01 [1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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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중·수·청 선거'에 계륵된 부산
“당원의 한 사람으로 국민의힘이 압승한 것은 기쁜 일이지만, 부산 앞날을 생각하면 걱정이 되는 것도 사실입니다. 국비 확보와 부산 현안 해결 측면에서는 국민의힘 의원들이 앞에서 끌고, 지역 민주당 의원들이 지원하는 방식이 최적의 구도인데, 황금비가 깨진 점이 너무나 아쉽습니다.”
최근 만난 부산 국민의힘 원로 정치인이 ‘4·10 총선’ 결과를 두고 내놓은 평가다. 이번 총선에서 국민의힘은 부산 18개 선거구 중 17석을 싹쓸이했다. 더불어민주당은 전국 단위의 대승에도 최소한 부산만 놓고 보면 고작 1석을 건지는 예상 밖 참패로 가까스로 명맥만 유지한 모양새가 됐다. 남부권의 스윙보터로 일컬어지던 부산에서 이처럼 ‘원사이드 선거’가 펼쳐진 것을 두고, 민주당은 물론 국민의힘에서조차 ‘17대 1의 미스터리’라는 반응이 나온다.
투표 결과를 자세히 뜯어보면 상반된 해석도 가능하다. 이번 선거에서 진보당 후보가 출마한 연제구를 제외한 17개 선거구에서 민주당 후보들은 총 80만 7990표를 얻어 44.98%의 득표율을 기록했다. 부산 모든 선거구에서 민주당 후보들은 40% 이상을 얻으며 선전했다. 부산 전체를 묶어 득표율대로 의석을 배정했다면 민주당을 위시한 범야권이 8석을 가져갔을 것이다. 부산도 민주당 지지 기반이 탄탄하고, 여차하면 민주당에 표를 던지겠다는 시민들이 적지 않다는 방증이다.
부산과 반대로 대전은 국민의힘 후보들이 42%를 득표하고도 7석 중 1석도 차지하지 못했다. 대전이 호남과 같은 ‘민주당 텃밭’이라고 말하지 않는 것처럼 부산을 보수 텃밭이라고만 치부할 수는 없다. 특히나 부산에서도 윤석열 대통령 지지도가 바닥을 긴 만큼, 이번 선거는 역대 어느 때보다 민주당으로서는 해볼 만한 선거였다.
이해가 가지 않는 건 민주당 지도부 태도다. 민주당은 이번 선거에서 철저히 부산을 패싱하는 모습을 보였다. 올 초 부산에서 흉기 피습을 당한 이재명 대표는 서울대병원 헬기 이송으로 ‘지역의료 무시’ 논란을 촉발시키며 부산 시민 자존심에 생채기를 냈다. 이 때문에 그가 당 대표로서는 물론, 개인적인 부채의식에서라도 이번 총선을 통해 부산 민심을 다독일 선물 꾸러미를 내놓을 것으로 보는 이들이 많았다.
하지만 이 같은 기대감은 깡그리 무너졌다. 선거 유세차 부산을 찾은 이 대표는 “오만불통의 윤석열 정권 심판”을 목 놓아 외치면서도, 부산 현안인 산업은행 이전에 대해서는 애써 언급을 회피했다. 산은 이전은 민주당 부산시당의 1호 공약임에도 말이다.
오거돈 전 부산시장의 최악의 시정 파탄으로 향후 10년간 민주당이 부산에서 발붙이기 어려울 것이라는 싸늘한 분위기에서도 전재수 최인호 박재호 같은 민주당 현역 의원들은 마치 대신 속죄라도 하는 것처럼 지역 발전을 위해 고군분투해왔다. 부산 민주당의 그간의 노력으로 이반됐던 지역 민심도 상당 수준 누그러든 게 사실이다.
하지만 이번 선거에서 이 대표를 비롯한 친명 지도부는 철저하게 부산을 무시하는 태도를 보였다. 심하게 말하면 부산 민주당이 지역에서 어렵게 지켜온 싹을 작심하고 자르고 나선 듯한 인상이었다. 가덕신공항 건설에 누구보다 큰 역할을 한 최인호 의원은 불과 693표 차로 고개를 떨궜다. “민주당 지지자이지만 자녀들이 취업할 수 있는 좋은 일자리가 생겼으면 하는 기대감에 이번 선거에서는 산은 이전에 적극적인 국민의힘에 표를 던졌다”는 이야기가 심심치 않게 들리는 것을 보면, 민주당 중앙당의 태도 여하에 따라 부산의 선거 결과는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었다. 바꿔 말하면 이번 선거는 중앙당에 짓눌린 부산 민주당의 답답한 무기력에 대한 또 다른 민심의 심판이기도 했다.
부산 사람으로서 우려스러운 점은 민주당이 전국적으로는 압승을 거두면서 ‘부산 패싱’이 고착화되는 것 아닐까 하는 것이다. ‘중수청(중도·수도권·청년) 표심’을 얻으면 이긴다는 선거 공식이 민주당 선거의 새 표준이 된다면, ‘보수세 강한 노인 인구가 많은 지방’ 부산은 버리기에는 아깝지만 그렇다고 딱히 먹을 건 없는 ‘계륵 신세’로 전락하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부산으로서는 글로벌허브도시특별법 제정과 산은 이전, 에어부산 분리 매각 등 지역 현안 처리를 위해 ‘거대 야당’인 민주당의 협조가 필수적이다. 민주당도 2년 남은 지방선거와 이듬해 대선에서 부산 없이도 낙승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아니라면 부산 현안 해결에 전향적으로 나서야 한다. “고작 한 석 주면서 부산 발전을 위해 도와 달라 하느냐”고 원망하기에 앞서 “이렇게 부산을 무시하면서 표를 달라고 하느냐”는 시민 목소리를 귀담아 들어야 한다.
2024-04-29 [1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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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4월 20일은 무슨 날이었을까요?
4월 20일이 무슨 날인지 아시나요?
'장애인의 날'이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요.
유엔은 1981년에 '세계 장애인의 해'를 선포하면서 '4월 20일'을 장애인의 날로 지정, 모든 국가가 기념하도록 했습니다. 우리나라도 같은 해에 '4월 20일'을 장애인의 날로 지정했죠.
왜 4월을 '장애인의 날'로 선정했을까요? 봄이 시작되고, 4월이 1년 중 만물이 소생하는 계절이어서 장애인의 재활 의지를 부각할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장애인의 날을 지나면서 장애인들 곁을 묵묵히 지키는 분들이 생각납니다.
제일 먼저 떠오르는 분은 조창용 부산시장애인총연합회 회장입니다. 그는 50년간 장애인복지운동가로 활동하며 20년 가까이 총연합회 회장을 맡아 장애인 곁을 굳건히 지키고 있습니다.
다음은 양재생 은산해운항공 회장이자 부산상공회의소 회장입니다. 지난 15일 부산상의 회장 취임식을 가진 그는 그 다음날인 16일 공식행사로는 처음으로 강서체육관에서 열린 장애인 한마당 축제에 참석했습니다.
그는 이날 "된다! 된다! 잘된다! 더 잘된다!"를 외치며 장애인들과 초긍정 에너지를 나눴습니다. 그러면서 강충걸 부산국제장애인협의회 회장의 숨겨진 공로와 선행까지 언급했습니다.
그가 밝힌 이야기는 이렇습니다. 지난해 '2023 부산세계장애인대회'를 유치했지만 대회 경비가 문제였습니다. 이의 해결을 위해 강 회장이 나서 양 회장과 이경욱 (주)참콤 회장과 함께 1000만 원씩을 기부했습니다.
이게 단초가 돼 강의구 부산영사단 총영사단장이 2000만 원을 기부했고, 이어 최금식 부산사랑의열매 회장 등이 주도한 '나눔명문기업' 15곳에서 1억 3000만 원을 지원해 대회가 성공리에 끝날 수 있었습니다.
강 회장은 지난 40년간 장애인을 대상으로 운전면허 취득·정보화 교육, 시 낭송 아카데미와 전국 장애인 시 낭송 경연대회, 장애인 가족사랑행복나눔대회, 자기계발 '영혼이 춤추는 도서관' 운영 등을 하고 있습니다. 2022년 국민훈장 모란장을 받기도 했습니다.
차별과 맞서 싸우는 40대 '여전사'도 있습니다. 부산 유일의 뇌병변 장애인 복지관인 '부산뇌병변복지관' 이주은 관장이 그 주인공입니다. 그는 30년간 사회복지사로 근무하며 뇌병변 장애인 복지관을 13년째 혼자서 이끌고 있습니다.
특히 그는 지난 16일 장애인의 날을 맞아 동네 이웃과 장애인을 초대해 '우리마을로 온 영화관'을 열었습니다. 앞서 지난해 10월에는 개관 20주년을 맞아 주민 등 900여 명을 초대, '동네 축제'로 만드는 등 장애인과 이웃이 함께 하는 행사를 만들어 지역 통합과 차별 해소에 앞장서고 있습니다.
발달장애인에게 희망을 전하는 부산 금정구 이지투게더 안미경 대표도 '작은 거인'입니다. 그는 이지특수교육연구소와 비영리단체인 이지투게더에서 '이지글리 합창단' 운영하고 있습니다. 지난 2월 기적을 이뤄냈습니다. 이탈리아 바티칸 성당에서 미사 공연 초청을 받아 발달장애인 13명을 무대에 세웠습니다. 성당 공연에 이어 로마에서도 두 차례 공연을 더 열었고, 발달장애 예술인의 그림 전시회도 가졌습니다.
이들은 입을 모아 장애인에 대한 인식을 개선하고 싶다고 합니다. 이제는 장애인에 대한 세상의 시선이 바뀌었으면 한다고 말합니다.
우리 모두 마음 문을 열고 장애인이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도록 하는 일이 필요합니다.
장애인을 후원하는 이들은 '앞으로 몇 년이나 봉사를 더 할 수 있을까'라는 고민이 가득합니다.
"내가 움직일 수 있고, 누군가를 도울 수 있을 때까지는 끝까지 봉사하겠다"는 하나같은 다짐에 또 감동합니다.
누가 말했던가요. "이 세상에는 장애인은 없다. 다만 편견만 있을 뿐이다." 누구나 장애인이 될 수 있습니다. 나뿐 아니라 내 가족 누구라도. 우리는 일시적 비장애인일 뿐입니다. 장애인을 우리와 다른 사람으로 보고 이웃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사회적 여건, 제도와 교육 등이 마련되길 기대합니다.
그래서 더 이상 '4월 20일'이 장애인의 날이 아니었으면 합니다. 1년 365일이 장애인의 날이자 비장애인의 날이 되길, 오랜 시간 장애인과 함께 해온 모든 분들과 함께 간절히 바라봅니다.
2024-04-24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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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찐로컬 로드'와 부산공동어시장
미식을 빼고 여행을 논하기는 어렵다. 특히 바다를 끼고 있는 부산을 여행할 때 ‘해산물’이 빠졌다면 미완의 여행일 것이다. 소위 농담처럼 이야기하는 ‘부산 풀코스’에는 미슐랭에서 인정한 돼지국밥집도, 뉴욕타임스가 선정한 꼭 가봐야 할 명소인 전포카페거리도 포함되겠지만 해산물을 빼놓고는 풀코스라고 감히 말할 수 없다.
풀코스 중 미식에, 그 중 해산물에 방점을 찍으면 찍을수록 원도심으로 무게가 실린다. 특히 관광객을 상대로 하는 식당이 아니라 로컬들이 가는 ‘찐로컬’의 미식을 추구한다면 원도심을 빼놓고 말하기가 어렵다. 원도심인 부산 중구 일대에는 숨겨진 오래된 맛집이 많다. 중구 중앙동 일대에는 물메기탕, 생대구탕 같은 클래식한 음식들이 가득하다. 노포들이 가득한 거리를 지나고 나면 ‘광안대교뷰’와는 다른 매력의 ‘영도대교뷰’를 볼 수 있는 포차들이 이어진다. 포차들을 지나 해안가를 따라 걷다 보면 자갈치시장이 나온다. 관광지로 유명한 탓에 자갈치시장은 찐로컬의 맛은 덜하지만 그래도 충분히 부산스러움을 품고 있다.
아쉽게도 부산 바다를 품은 ‘찐로컬 로드’는 자갈치시장을 끝으로 단절된다. 송도해수욕장이 최근 케이블카, 용궁구름다리 등의 인프라가 확충되며 자리를 잡아가고 있지만 자갈치시장에서 송도해수욕장까지 공간은 퀭하기만 하다.
그 단절의 중심에 부산공동어시장이 있기에 찐로컬 로드의 끊김은 아쉽다. 왜냐하면 부산공동어시장은 찐로컬적 요소가 듬뿍 담겨 있기 곳이기 때문이다. 당장 이곳에는 전국에서 가장 신선한 고등어로 요리를 한다는 구내식당이 있다. 구내식당에는 고등어구이, 고등어조림 등의 고등어 전문 요리를 선보인다. 고등어 요리가 다 비슷하지라는 생각도 들지만 눈앞에 보이는 위판장과 생선 냄새가 미각을 더욱 활성화시킨다.
여기에 스토리를 더하면 찐로컬의 향은 더욱 찐해진다. 부산공동어시장은 1963년 부산항 1부두에 ‘부산종합어시장’이라는 이름으로 처음 개장했다. 이후 1971년 ‘부산공동어시장’으로 이름을 바꿨으며, 1973년에 현재 위치인 부산 서구 남부민동에 자리를 옮겼다. 국내 연근해 수산물 중 30%, 특히 고등어는 80%가 어시장을 거쳐 전국에 유통된다. 괜히 고등어가 부산 시어가 아니다. 이러한 역사성 때문에 부산시가 지난해 말 부산미래유산에 부산공동어시장을 선정했다. 시각적 효과, 후각적 효과에 스토리가 더해지면서 고등어의 맛이 더욱 살아나는 느낌이다.
그동안 부산공동어시장이 찐로컬적인 요소는 풍부했지만 비위생적이라는 오명에 관광지로서 매력이 없었다. 부산공동어시장은 올해 말 현대화 작업을 앞두고 있다. 현대화가 진행되면 위판 방식, 경매 방식 등이 달라져 현재의 모습은 상당 부분 사라지게 된다. 비위생적이라는 오명도 씻겨나갈 것이다.
다만 사라질 현재의 모습에 대한 기록도 없다는 점은 아쉽다. 2014년 발간한 부산공동어시장 ‘50년 사’ 책이 전부다. ‘찐로컬’의 맛을 배가시켜줄 이야기가 사라지고 있는 셈이다. 〈부산일보〉 취재진이 4개월간 현장동행과 인터뷰를 통해 지금의 모습을 생생하게 영상과 기사로 담아 독자들에게 공개하고 있는 이유다.
추운 새벽 10시간가량 쪼그려 앉아 어종과 크기에 따라 일일이 손으로 분류하는 ‘야간부녀반’, 위생과 선도 문제가 있지만 빠르고 대량 위판을 가능하게 하는 ‘바닥 위판’, 생선에 이물질이 붙는 것을 방지하고 재사용이 가능한 ‘목재 어상자’, 국내 최대 위판량을 빠르고 정확하게 처리하는 ‘수지식 경매’ 등은 현대화 사업과 발맞춰 사라질 어시장의 대표적인 얼굴이다. 이외에도 배에서 수백kg의 고기를 뜰채로 떠 육지로 옮기는 ‘양륙반’, 품질에 대한 집착으로 최상의 고기를 골라내는 ‘중도매인’, 선도·시세 등 엄청난 정보를 종합해 단 몇 초 안에 호가를 부르는 ‘경매사’들의 노하우도 우리의 미각을 더욱 예민하게 만들어줄 훌륭한 조미료다.
사람뿐 아니라 공간에 대한 이야기도 흥미롭다. 고기 배송과 선도 유지를 위해 필수적인 얼음을 공급하는 냉동창고, 어시장 작업자들의 허기를 달래줬던 식당, 다방, 잔술집, 리어카 커피숍에 대한 이야기도 부산공동어시장에 고스란히 남아있다.
현대화 이후 이러한 찐로컬적인 요소들이 어떻게 요리될지 궁금하다. 단순하게 기존 건물을 부수고 새 건물을 짓는 것이 아닌 찐로컬의 향을 어떻게 남기느냐를 두고 많은 고민이 필요하다. 고등어에는 두뇌에 좋은 DHA가 풍부하다고 하니 찐로컬 로드를 길게 연장시킬 다양한 아이디어가 나오길 기대해 본다. 부산 풀코스에 부산 시어인 고등어가 빠지는 것은 섭섭한 일이다.
2024-04-22 [1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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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과연 금투세를 낼 수 있을까?
북유럽 같이 흔히들 ‘복지국가’라고 부르는 곳에선 자신의 수입의 절반 가까이 혹은 절반 넘게 세금으로 낸다고 한다. 예를 들어 덴마크에선 수입이 원화로 1억 원 정도를 넘지 않으면 40% 가까이, 1억 원을 넘게 벌면 60% 정도를 세금으로 내야 한다. 덴마크 사람이라고 다들 기쁜 마음으로 세금을 내지는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국가가 그렇게 많은 돈을 개인에게 가져가더라도 국민적 저항이 일어나지 않는 게 신기할 뿐이다.
북유럽 사람들은 많은 세금을 내는 걸 어렸을 때부터 보고 자랐으니, 높은 세율에 저항감이 없을 것이다. 익숙해서 많은 세금을 당연히 생각한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단지 익숙하다는 것이 전부는 아닐 것이다. 지금의 덴마크 사람들도 우리나라 같은 환경에 넣어두고 높은 세율로 소득세를 걷으면, 대부분 반발할 것이다. 반대로 덴마크로 이민을 떠나 살게 된다면 어떨까. 처음엔 높은 세율에 당황하겠지만, 점차 당연하게 여길 것이다.
차이는 국가와 공동체에 대한 믿음 정도인 것 같다. 나라가 비교적 공정하게 세금을 걷고 있고, 그 돈을 공공의 이익을 위해 알뜰하고 효율적으로 쓸 것이라고 믿으면, 세금이 그리 아깝지는 않을 듯하다. 어떤 나라의 국민은 세금을 내면서 이 돈이 복지로 돌아올 것이라 믿는다. 어떤 곳에서는 운이 나빠 더 많은 세금을 낸다는 생각이 퍼져 있다.
요즘 주식 투자자들은 걱정이 많다. 지난 총선은 야당이 압승했다. 그 결과 금융투자소득세 폐지는 어렵게 됐다는 것이다. 여당 지지자든, 야당 지지자든 일단 주식 투자자라면 대다수가 일명 금투세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일 것이다. 금투세는 그동안 사실상 세금 부담이 거의 없었던 주식·채권·펀드·파생상품 등 모든 금융투자상품에서 발생한 소득에 대해 부과한다는 내용이다. 수익이 5000만 원이 넘으면 양도차익에 대해 20%를, 수익이 3억 원이 넘으면 25% 세율이 적용되는 게 골자다.
사실 주변에 주식 등으로 5000만 원 넘는 소득을 낸 사람을 거의 본 적이 없다. 그럼에도 다수 투자자가 금투세에 부정적인 것은 몇 가지 그럴 듯한 이유가 있다. 어떤 이들은 자신도 주식으로 5000만 원 넘게 벌 수 있다고 믿을 것이다. 물론 현실은 금투세 대상이 되는 영광은 아무나 누리는 게 아니다.
대다수 투자자들이 우려하는 건 투자시장의 위축이다. 높은 소득세가 부과되면 큰 손들이 주식 시장을 떠날 수 있고, 가뜩이나 심한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더 악화시킬 수 있다는 거다. 시장이 위축되면 개인의 소득이 크든 작든 부정적 영향을 받고, 국가의 성장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반면 금투세의 필요성을 주장하는 근거들도 상당히 일리가 있다. 일반 근로자의 소득세율보다 금융투자자들은 상대적으로 세금 부담이 적다. 경제 구조 자체가 너무 불균형적이기 때문에 금투세로 소득세 부담의 균형을 맞춰야 한다는 거다. 소득이 있는 곳엔 세금이 있어야 한다는 대원칙에 준해 생각하면, 금투세의 당위성은 충분하다.
그럼에도 금투세가 투자자들로부터 미운 털이 박힌 것은 국가와 정치권의 책임도 크다. 금투세는 문재인 정부에서 마련했고, 여야 합의를 거쳐 내년부터 시행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2022년 윤석열 정부는 출범 초기 금투세 폐지로 방향을 잡았고, 총선을 거치면서 정치 쟁점화가 되기도 했다.
일련의 과정을 보면 투자자나 증권사 입장에선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다. 금투세를 준비하다가도 운이 좋으면 없던 일이 될 것 같기도 하니, 투자자들은 금투세 반대 논리를 놓지 못하는 것이다. 증권사들은 금투세 관련 전산시스템을 구축하다가, 폐지 논의에 작업을 멈췄다고 한다. 이제 또 작업을 재개해야 하는 상황이다. 이 과정에서 증권사들은 적잖은 비용을 허비했다.
금투세 논란은 세금 문제에 있어 국가에 대한 신뢰도가 낮은 것은 국가가 자초한 일이라는 생각을 들게 한다. 금투세가 도입되는 과정에서 이 세금의 필요성은 국민에게 충분히 설명되지 않았다. 국민에게 세금을 취지를 알리는 것보다, 상대당과의 힘겨루기에 더 많은 에너지가 쓰였다. 그리고 정권이 바뀌니 정책도 뒤집혔다. 이런 상황에서 어느 누가 선뜻 세금을 낼 수 있겠는가.
정치권에서부터 금투세를 정치적 도구로 쓰기 않고 객관적으로 검증하고 논의를 했으면 좋겠다. 납득이 되는 논리로 폐지 여부를 결정하고 세율 등도 유지하거나 수정하기를 바란다. 충분히 합리적인 세금이라고 판단이 되면 금투세에 대한 저항은 줄 것이다. 만일 금투세가 유지되면, 이왕이면 다들 투자를 잘해서 어마어마한 수익을 낸 뒤 영광스럽게 금투세를 내기를 바란다.
김백상 경제부 금융·블록체인팀장 k103@busan.com
2024-04-17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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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보수텃밭에서 진보 씨앗 키우는 경남
격렬했던 제22대 총선이 끝났다. 나라 곳곳에 게시됐던 선거 현수막도 철거되고, 다시 조용한 일상으로 돌아온 기분이다. 총선 결과에 대한 해석이 연이어 나오는 가운데 경남 선거 결과를 놓고도 다양한 분석이 쏟아지고 있다.
전국에선 더불어민주당이 압승하고 국민의힘은 참패했지만, 경남의 정치 지형은 외형상 ‘현상 유지’다. 여야의 숫자상 의석이 그대로이기 때문이다. ‘국민의힘 13석, 민주당 3석’이던 경남도 내 여야 의석이 이번에도 유지됐다. 민주당이 내건 ‘정권 심판’ 슬로건이 수도권 유권자를 움직였지만, 경남에는 제한적인 영향밖에 미치지 못한 결과다. 오히려 직전 총선과 비슷한 범야권 압승 분위기가 대구·경북, 부산과 함께 ‘보수 텃밭’으로 분류되는 경남에서 유권자들이 국민의힘 지역구 후보를 더 지지하게 만든 요인으로 작용한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현상 유지’라는 표현처럼 여야 모두 승리했다고 장담하기에는 애매한 성과를 낸 상황이다.
우선, 국민의힘은 이번 총선에서 그나마 “선방했다”는 분위기다. 21대 총선 때 국민의힘 전신 미래통합당은 경남 16곳 중 ‘낙동강 벨트’ 3곳(김해갑·김해을·양산을)과 공천을 받지 못해 탈당한 김태호 후보에게 내준 1곳(거창산청함양합천)을 제외한 12개 선거구에서 이겼다. 22대 총선을 앞두고 국민의힘은 경남 16개 전 지역구를 석권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목표 달성은 못 했지만, 문재인 전 대통령 사저가 있는 ‘낙동강 벨트’ 양산시 지역구 2곳에서 모두 승리했다. 양산을 김태호 당선인은 지역구가 생긴 2016년 20대 총선 이후 국민의힘 후보로는 처음 승리했다. 양산갑 윤영석 당선인은 유세 도중 문 전 대통령을 향한 “문재인 직이야(죽여야) 돼”란 막말에도, 내리 4선에 성공했다. 험지로 차출된 김태호 당선인은 부산·울산·경남의 진보 바람 확산을 막는 혁혁한 역할을 한 공로로 당내 위상이 강화될 전망이다. 이처럼 국민의힘 입장에서 양산을 탈환은 1석을 빼앗았다는 의미 외에도 ‘보수의 텃밭’을 굳건히 지켜낼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게 된 성과다.
반면, 민주당은 낙동강 벨트인 양산을에서 1석을 잃었지만, 대신 경남 수부도시인 창원시에서 귀중한 1석을 차지했다는 점에 큰 의미를 두고 있다. 민주당은 당초 낙동강 벨트를 발판으로 삼아 16곳 중 ‘8석+α’가 가능하리라 내심 기대했다. 김해갑·김해을·양산을 등 낙동강 벨트 교두보 3곳, 문재인 전 대통령 사저가 있는 양산갑, 5개 의석이 걸린 창원시 등 경남 중동부권에서 의석 추가를 기대했다. 그러나 김해갑·김해을 수성에는 성공했지만, 양산을은 국민의힘에 내줘 낙동강 벨트 확장에 실패했다.
하지만 한 번도 민주당 당선인을 배출하지 못한 창원시 5개 지역구 중 한 곳에서 승리한 점에는 상당한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직전 창원시장을 지낸 허성무 당선인이 야권단일화 결렬을 극복하고 국회에 입성하게 됐다. 허 당선인은 2016년 제20대 총선 때 처음으로 성산구 국회의원 후보로 나섰지만, 당시에는 정의당 후보(고 노회찬 의원)와의 야권 단일화로 후보직을 사퇴함으로써 미완의 도전에 그쳤다. 이후 민선 7기 창원시정을 이끈 그는 2022년 지방선거에서 창원시장 재선에 도전했지만 실패하고, 다시금 국회 입성을 준비해왔다. 그는 이번 승리로 야권단일화 결렬을 극복하고 범진보 정당에 승리를 안긴 첫 주인공이 됐다. 경남 ‘정치 1번지’이자 ‘진보정치 1번지’로 불리는 창원 성산구에 민주당 씨앗을 심었다는 자체 평가다.
결과적으로 이번 총선에서 국민의힘과 민주당 모두 경남에서 당초 목표를 이루지 못했다. 자만보다는 자성의 목소리가 높다. 총선 결과 평가 관점도 다르다. 국민의힘 경남도당은 성명서를 통해 “이번 선거에서 동남풍을 일으켜 경제 재도약과 정치 대혁신을 이끌고자 했지만,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면서 “낙동강벨트에서 개헌 저지선을 확보해 대한민국 최후의 보루로써 소임을 했다”고 밝혔다.
반면 민주당 경남도당은 “도민 눈높이와 바닥 민심을 제대로 읽어내는 데 부족했다”면서 “당선자와 함께 윤석열 정권이 무너트린 민생·민주주의를 바로 세우고 ‘분열을 넘어 갈등을 넘어, 완전히 새로운 정치’를 통해 정책정당 가치를 실현하는 데 앞장서겠다”고 강조했다.
‘여소야대’로 기울어진 전국 정치 상황과 달리, 경남은 여전히 ‘여대야소’ 형국이다. 보수를 계속 지키겠다는 여당과 새로운 정치 씨앗을 심었다는 야당이 공존하는 상황이다. 여대야소로 협치가 화두가 된 상황에서 경남 상황에 맞는 협치 전략이 필요하다. 22대 국회가 개원하면 사천에 설립 예정인 우주항공청 후속 방안으로 ‘우주항공복합도시 건설지원 특별법’ 통과와 창원 의대 신설 등에 대한 도내 의원 16명의 협치를 기대해 본다.
2024-04-15 [1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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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아름답게 '지는' 벚꽃처럼
올봄 뒤늦은 개화에 벌써 ‘벚꽃 엔딩’이다. 다행히 지난 주말 벚꽃 여행 막차를 탔다. 가족과 찾은 경북 구미시 금오산과 김천시 연화지에는 만개한 벚꽃과 인증샷을 찍으려는 상춘객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가다 서다 반복하는 거북이걸음에도 지난한 일상을 위로하는 듯한 생기에 기분이 썩 괜찮았다. 소음처럼 들릴 법한 노점상의 ‘손님 몰이’와 총선을 앞둔 여야 후보의 확성기 유세도 이날은 구수했다.
해와 벚꽃은 질 때가 더 아름답다고 했다. 주말이 지나자 거짓말처럼 우수수 낙화했다. 출근길 강한 봄바람과 함께 흩날리는 ‘벚꽃비’는 봄날의 피날레를 장식하듯 장관이었다.
봄기운 속 시작한 제22대 총선 레이스도 벚꽃 엔딩과 함께 막을 내렸다. 앞서 공천과 본 선거 과정 모두 화창한 봄날이 무색하게 혼탁했다. 여야를 막론하고 이전투구가 잇따랐고, 공약도 직전 대선과 지방선거의 것을 재탕하거나 현실성 없는 것을 남발했다. 벚꽃이 ‘설렘 지수’를 끌어올렸다면, 구태를 되풀이한 총선은 ‘싫증 지수’를 높였다. 그런데도 국민은 32년 만에 최고 투표율로 다시 한번 새 정치에 기대를 걸었다.
어찌 됐든 민주주의의 축제인 선거가 끝이 났다. 벚꽃 엔딩처럼 아름답게 ‘지는’ 총선 엔딩이 가능할지는 두고 볼 일이다. 여론조사 때부터 워낙 접전지가 많았고, 상대 후보를 겨냥한 폭로전과 고소·고발이 난무했던 터라 총선 후유증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크다. 이미 총선 예비후보 등록이 시작된 지난해 12월 12일부터 지난달 26일까지 검찰과 경찰이 적발한 선거 사범만 각각 474명, 895명에 달한다. 허위 사실 공표·흑색선전 사범이 이례적으로 40%대를 넘길 정도로 유언비어가 판친 셈이다. 사전투표 때도 조작, 부정선거 음모론이 또다시 제기되며 ‘피곤한 결말’을 예고했다. 최근 가짜뉴스 등으로 인해 자신의 기존 신념을 더욱 견고하게 하는 ‘확증 편향’도 심해져 유튜버나 일반 시민까지 시끄러운 결말을 부추기는 꼴이다.
지난 제21대 총선의 경우 대전의 낙선자들이 ‘4·15 국회의원 선거 실태 조사단’을 구성하는가 하면 한 낙선자는 중앙선관위 위원장을 선거방해 등의 혐의로 검찰에 고발하기도 했다. 당시에도 사전투표 조작, 부정선거 등을 이유로 126건의 소송이 제기됐지만, 모두 법원에서 문제가 없는 것으로 판명됐다. 물론 터무니없는 결과에 승복할 수는 없지만, 묻지마식 고소·고발이 남발되는 현실을 부정할 수 없다.
더 우려스러운 건 당내 후폭풍이다. 낙선자 스스로를 돌아보기보다 선거 패배의 책임을 지도부에 전가하며 격랑을 겪는 일이 매번 반복됐다. 이번 경선도 ‘비명(비이재명)·비윤(비윤석열) 횡사’ 등의 논란으로 계파 갈등이 컸던 만큼, 총선 직후 당내 주도권 싸움이 본격화할 거란 전망이 나온다. 민생과 민심을 제쳐두고 말이다.
승자의 손을 들어주는 아름다운 퇴장은 위기의 대한민국을 위해서라도 필요하다. 고금리·고물가 장기화로 ‘먹거리 양극화’가 빚어질 정도로 체감 경기가 바닥이다. 최근 소득 하위 20%의 경우 가격이 고공행진 하는 신선 식품 대신 값싼 가공식품을 찾으면서 엥겔지수가 하락하는 역설적인 현상도 나타났다. 엥겔지수는 전체 소비지출에서 식료품비가 차지하는 비중으로, 통상 낮을수록 식비 이외 지출이 많아 가계에 여유가 생긴 것으로 해석된다.
모두가 알다시피 소멸 위기에 놓인 지역 상황은 더 심각하다. 제2의 도시 타이틀이 부끄럽게 부산은 청년 인구 이탈 가속화, 저출산 쇼크 등으로 ‘노인과 바다’ 도시라는 오명을 쓴 지 오래다. 그나마 ‘해양 수도’라는 명목 아래 항만·해양·수산업이 고도화하며 체면치레한다. 자연스럽게 수도권과의 격차는 더 벌어지고 있다. 산업은행 이전, 부울경 메가시티·특별연합 구축과 같은 부산의 초대형 이슈가 정쟁으로 밀릴 때, 수도권은 지난달 말 GTX(수도권 광역급행철도)-A를 완공해 ‘30분대 출퇴근’ 시대를 자축했다. 최근 인천에서는 3기 신도시가 착공했고, 경기도 용인시에서는 ‘반도체 메가 클러스터’가 속도를 내며 수도권 일극체제가 견고해지는 모습이다.
박탈감에 빠진 이 시대에 맞서 제22대 국회가 곧 출범한다. 당선자들은 제 자리 지키기에 급급해 공약을 외면하는 모습을 더는 보이지 않길 바란다. 낙선자들도 그들이 하루빨리 민생과 지역 현안 해결에 집중하도록 패배의 아픔을 머금고 한발 물러서야 한다. 벼랑 끝에 몰린 지역을 살리기 위해 적절한 견제뿐 아니라 필요하다면 초당적 협력도 불사해야 할 때다. 시민은 선거 과정에서 본 낙선자들의 열정과 진정성을 쉽게 잊지 않는다. 아름다운 벚꽃 엔딩은 끝이 아닌 다음 개화를 위한 또 다른 시작임을 알아야 한다.
이승훈 해양수산부장 lee88@busan.com
2024-04-10 [2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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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당신의 선거를 관통하는 사자성어는?
학창 시절 한자 획까지 기억해 가며 고통스럽게 사자성어를 암기했던 기억이 있다. 한문 선생님의 손바닥 회초리는 맵기로 유명했다. 쪽지 시험에서 자주 틀린 사자성어는 볼 때마다 손가락 마디가 얼얼해지는 착각이 든다. 그래도 사회생활 해보니 빠지지 않는 게 사자성어다. 처한 상황을 두루 아우르되 듣는 이의 폐부를 찌르는 그 압축미. 직장부터 가정, 자녀 이야기까지 호사가의 술자리 안주로 이만한 것도 드물다.
선거판만큼 사자성어가 만만한 곳도 없다. 캐치프레이즈란 게 압축적일수록 소구 효과가 좋다. 그러니 사자성어의 효능이야 두말하면 입이 아프다.
선거판을 ‘이전투구’라 일컫는 건 진부하다 못해 식상한 수사다. 시스템공천이니, 클린공천이니 해도 선거 초반 팔자 좋던 시절 이야기였다. 서로가 승리를 장담하던 상황이니 누군들 점잖은 척 못했을까. 사람의 본바탕은 다급해져야 나온다. 투표일을 코앞에 두니 진흙탕에서 처참하게 싸우는 개들의 모습이 오버랩 되는 건 이번 22대 총선도 예외가 아니다. 식상하긴 해도 ‘이전투구’는 선거판을 표현하는 가장 적합한 사자성어라는 타이틀을 당분간은 내려놓을 것 같진 않다.
지난해 급부상한 ‘양두구육’은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의 작품이다. 당 대표 자리에서 내려오며 자격 없는 윤석열 후보를 포장해 대통령으로 팔았다는 뜻으로 비난한 이 넉 자가 제대로 히트를 쳤다. ‘표리부동’과 쓰임은 같지만 요즘은 더 빈번하게 쓰인다. ‘이전투구’처럼 개가 들어가서 듣는 상대에게 주는 모멸감이 아주 찰지다.
히트작이라면 조국혁신당으로 돌풍을 일으키는 조국 대표의 ‘내로남불’도 빠질 수 없다. 본인의 과거 발언과 배치되는 자녀의 입시비리 혐의가 드러나면서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댓구가 절묘하게 완성됐다. 민주당을 궤멸 위기로 몰아넣었던 넉 자지만 2심 유죄 판결에서도 조 대표의 비례정당은 지지율 30%를 넘어선 상황이라 ‘기사회생’이라 바꿔 불러야 할 판이다.
‘내로남불’의 풍파에 휩쓸린 사람은 가까운 부산 수영에도 있다. 야당의 막말을 받아치며 전투력 좋은 여당 스피커로 활약했던 무소속 장예찬 후보도 20대 시절 본인의 막말에 발목이 잡혔다. 〈부산일보〉 여론조사 지지율 1위를 달리다 공천장이 날아갔다. 국민의힘 공천관리위원회는 ‘읍참마속’의 심정으로 장 후보의 공천을 취소했다. 그러나 그 이후에도 무소속 출마로 명예회복을 하겠다며 벼르고 있다. 여당의 ‘읍참마속’이 묘수가 됐을지, 악수가 됐을지 선거 결과를 기다리는 이가 많다. 보수세가 높아 뻔한 선거구로 분류되던 수영이 단숨에 전국구 관심을 받게 된 까닭이다.
22대 총선의 종착역이 먼 발치에서 보이기 시작하며 공고하던 부산의 여당 지지세에는 금이 갔다. ‘비명횡사’ 외치며 표정 관리 해왔지만 전국적으로 범야권 200석이 언급될 정도로 풍향이 바뀌었다. ‘독야청청’ 원외에서 높은 인기를 누리다 여당 선거를 총괄하게 된 한동훈 선대위원장도 용산에서는 연일 악재가 터지니 마음이 급해진 게 눈에 보인다. 급기야 ‘정치를 개같이’ ‘쓰레기 같은 말’이라는 수위 조절이 안되는 발언까지 내지른다. 초반 신선했던 이미지는 온데간데 없다. 한동훈도 정치 발 담그니 어쩔 수 없다며 유권자의 정치혐오는 한층 더해진다. 다들 ‘근묵자흑’이라 혀를 차기 바쁘다.
여전히 접전 상황인 지역구의 후보는 단 하루가 아쉽지만 사전투표까지 마치며 전국 유권자의 31%가 권리 행사를 마쳤다. 전국별, 부산 선거구별 사전투표율이 나오니 이번엔 ‘아전인수’가 등장한다. 편한대로 물길을 돌려 제 논에 물을 대는 모습처럼 여당이고, 야당이고 사상 처음으로 30%를 돌파한 사전투표를 자의적으로 해석하며 기대를 품는다. 전국구로 보자면 야당세가 강한 전남과 전북이 나란히 투표율 1위와 2위를 차지했다. 부산에서는 반대로 전통적으로 보수세가 짙은 금정구와 동구, 서구 등이 투표율 상위권에 이름을 올렸다. 야당에서는 정권 심판론이 힘을 얻었다 하고, 여당에서는 선거 막판 보수세가 결집하고 있다고 하니 그야말로 해석하니 나름이다.
그래도 미우나고우나 우리 동네를 4년간 대표할 선출직을 뽑는 날이 하루 앞이다. 내가 선택한 후보가 우리 동네를 위해 ‘분골쇄신’할 일꾼인지, 짧은 봄날 고개 숙였다가 유권자 위에 군림하려는 ‘안하무인’의 인사인지 꼼꼼히 살피는 지혜가 필요한 시점이다.
지인의 설득에 기장 철마에 주말 농장이라 하기도 민망한 텃밭 한 귀퉁이를 얻었다. 주말이라도 성실한 가장인양 점수를 딸 참이었는데 이 좋은 봄날에 가족을 데리고 가 모종 한 번 심지를 못했다. 선거가 끝이 나야 봄이 올 모양이다. 정치부 기자에게 선거는 ‘춘래불사춘’이다.
권상국 정치부 차장 ksk@busan.com
2024-04-08 [1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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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폐업 웅상중앙병원 현실적 대책 세워야
지난 2월 28일 오전 경남 양산시청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기자회견장에 한 주민이 찾아왔다. 주민은 “언론에서 웅상중앙병원 폐업 기사를 내면서 양산시 비상 의료대책은 알려주지 않아 관련 브리핑 소식에 무작정 프레스센터를 방문했다”고 말했다.
그는 “2014년 웅상중앙병원 전신인 조은현대병원이 문을 닫을 당시 아픈 아기를 안고 여러 병원을 전전했던 생각이 났다”며 “당시 양산시의 비상 의료대책에도 1년 이상 의료 공백으로 생명에 위협을 느낄 정도로 큰 불편을 겪었던 만큼 이번엔 확실한 후속책이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동부양산(웅상출장소 4개 동)이 웅상중앙병원 폐업으로 엄청 시끄럽다. 웅상중앙병원 폐업은 때마침 전공의 집단행동으로 인해 인근 다른 병원 이용에도 지장을 줄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주민 불안감을 더 가중시킨다. 제22대 국회의원 선거와도 맞물리면서 ‘총선 이슈’로 급부상했다.
웅상중앙병원은 지난해 12월 병원장이 숨진 후 누적 적자 등으로 2월 말 폐업했다. 동부양산에는 104곳의 병의원 등이 운영 중이다. 그러나 지역 유일한 종합병원이자 응급의료실을 갖춘 곳이 웅상중앙병원이어서 응급의료 공백을 우려한 주민 불안감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이런 상황을 인식한 양산시는 비상 응급의료 체계 구축에 나섰다. 동부양산 응급환자 진료를 위해 서부양산 병원 2곳과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응급 환자의 신속한 이송을 위해 119구급차는 3대로 늘렸다. 동부양산 일부 의원의 야간진료 시간도 연장했다. 동부양산과 인접한 부산, 울산지역 응급실 운영 의료기관과 야간 휴일 의료기관에 대한 정보도 홍보했다.
하지만 촌각을 다투는 위급 상황 발생 시 골든타임을 못 지킬 가능성이 크다. 이 때문에 동부양산 주민들 사이의 공공의료원 설립 열망이 서명운동으로 이어지고 있다. 22대 총선 여야 후보들도 운영 주체가 다른 공공의료원 설립을 대책으로 발표했고, 녹색정의당은 1만 명 서명 운동을 제안해 공공의료원 설립에 불을 붙였다.
주민 열망대로 동부양산의 의료 공백 해결에는 공공의료원 설립이 정답이다. 그러나 완공 때까지 많은 시간이 소요되고, 정부 승인도 쉽지 않다. 김해시는 2021년 코로나19 팬데믹 발생 후 공공의료원 설립에 나섰고, 지난해 6월 타당성 조사 용역에 착수해 오는 8월 결과가 나온다. 김해시는 내년 상반기 보건복지부 승인과 기획재정부 예타 조사 신청을 거쳐 2030년 300병상 규모의 공공의료원을 완공할 방침이다.
2017년 폐업한 부산 침례병원 공공화 사업도 2018년부터 7년째 추진 중이다. 침례병원 자리에 보험자병원을 설립하는 공공화 사업은 추진 초기 민간병원이 공공병원으로 변경되는 첫 사례여서 큰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공공의료원 설립은 사업계획 수립을 시작으로 부지 선정, 타당성 조사, 보건복지부 승인, 기획재정부의 예타 조사, 예산 확보, 인허가 절차, 건립으로 평균 9~10년 소요된다.
양산시가 검토 중인 공공의료원 역시 김해시 공공의료원(도립)과 같은 절차를 거친다. 양산시가 웅상중앙병원 인수를 통한 공공의료원 설립을 추진하면 사업계획·부지 선정을 제외한 공공의료원 설립 절차를 따를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양산에 양산부산대병원이 운영 중이고, 김해에 공공의료원이 설립되면 양산시 공공의료원 설립은 상대적으로 더 힘들 전망이다. 양산시는 최근 여야 총선 후보들에게 ‘양산의료원 설립’을 공약으로 반영할 것을 제안했다.
현재로선 웅상중앙병원을 인수할 민간인 또는 업체를 찾는 편이 더 현실적이다. 웅상중앙병원을 개인이나 영세 의료법인보다 대학병원이나 대기업, 재력이 있는 의료법인에서 인수하도록 양산시는 물론 지역 정치권이 힘을 모으고 있지만, 성사 여부는 장담할 수 없다.
웅상중앙병원은 2014년 부도로 문을 닫은 조은현대병원을 인수·재개원했다. 2006년 개원한 조은현대병원은 운영 과정에 적자가 발생했고, 2014년 문을 닫았다. 웅상중앙병원의 하루 외래환자는 평균 465명, 입원환자는 186명이었지만, 연간 많은 적자가 났다. 개인이나 영세 의료법인이 인수하면 조은현대병원이나 웅상중앙병원처럼 일정 시간 내 부실과 폐업이 반복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양산시는 웅상중앙병원 조기 정상화를 위해 인수자를 물색하는 동시에 동부양산 공공의료원 설립 여부를 빠른 시일 내에 결정하고 로드맵도 제시해야 한다. 지역 정치권과도 손잡고 총력전을 펴야 한다. 365일 24시간 응급실 운영을 바라는 동부양산 주민들의 기대가 하루빨리 이뤄질 수 있는 날을 기대한다.
2024-04-03 [1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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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맨발로 걷기 좋은 도시
다시 어김없이 봄이 왔다. 차디찼던 땅이 온기를 품고, 맨살만 드러냈던 숲도 기지개를 켠다. 사라졌던 곤충들이 보이는가 싶더니 새들도 곳곳에서 목을 놓아 자신을 뽐낸다. 산과 도시에 활짝 핀 꽃처럼, 겨우내 숨 돌렸던 맨발걷기 바람도 다시 분다.
서울과 대구, 대전 등 대도시는 물론 전국 각지의 시민들은 올봄에도 맨발걷기에 진심이다. 맨발로 땅을 딛고 오롯이 지구와 접촉하는 맨발걷기가 건강한 삶을 살아가는 데 큰 도움이 된다는 사실이 널리 알려지면서 새로운 눈을 뜨게 됐다. 흙길을 뒤덮은 아스팔트 위에서 바닥 두꺼운 신발을 신고 살아가며 놓쳤던 소중한 자연의 가치를 맨발걷기가 다시 일깨운 것이다. 국민 대다수가 아파트로 뒤덮인 ‘공중 주택’에 살게 되면서 본능적으로 흙과 땅을 갈망하게 된 것일지도 모른다.
서울 강남구 대모산과 대전 계족산 등 전국적인 맨발걷기 명소에 자연스럽게 사람이 몰리고, 사는 곳 주변에서 맨발로 걷는 시민들이 점점 늘어난다. 민간에서 맨발 열풍이 일자 지자체들의 경쟁이 시작됐다. 맨발걷기에 좋은 길과 세족장, 신발장 등 시설을 앞다퉈 만든다. 시민이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영위하도록 돕는 것이 소중한 세금으로 봉사해야 하는 그들의 임무여서다.
지자체가 맨발걷기 환경 조성을 위해 지속적으로 예산을 집행하려면 근거가 필요하다. 지난해 3월 전북 전주시에서 처음으로 맨발걷기 활성화 지원 조례가 태어났다. 이후 지금까지 전국 140여 개 지자체가 조례를 제정했다고 한다. ‘맨발걷기에 좋은 환경’이 행복하고 살기 좋은 도시임을 가늠하는 새로운 기준이 된 것이다.
부산의 산과 바다, 동네 공원, 학교 운동장에서도 맨발걷기를 하며 건강하게 삶의 여유를 즐기는 시민들을 만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금정산과 장산, 황령산, 백양산 등 크고 작은 산들 사이에 삶터가 둥지를 틀었고, 낙동강과 수영강에다 해운대, 광안리, 송정, 다대포, 송도, 일광, 임랑 7개 해수욕장을 따라 긴 해안선까지 두른 도시 부산은 맨발걷기에 선물 같은 도시다.
이미 오래 전부터 맨발걷기의 효용을 체험하고 전파에 나선 이들도 산과 강은 물론 촉촉한 바닷가에서 맨발로 걷는 ‘슈퍼 어싱’까지 가능한 부산이 가진 천혜의 환경에 찬사를 보낸다. 한데 안타깝게도 이들은 맨발걷기를 향한 시민 열망이 가장 늦게 반영되는 곳이 부산이라 입을 모은다.
부산에서는 지난해 9월 금정구가 조례 제정 신호탄을 쐈고, 지난달 해운대구도 가세했다. 16개 구군 가운데 부산시를 포함한 11개 지자체가 차례로 맨발걷기 조례를 공포했다. 이를 근거로 올해만 맨발걷기 보행로 18곳이 새로 열린다. 기존 맨발길을 합하면 25곳이나 되지만 생색내기에 그친다는 의견이 많다. 안타깝게도 지자체들이 제각각 그리 길지 않은 길을 만들고는 맨발걷기에 동참했노라 홍보하고 있어서다. 흙길, 황톳길이 많은 회동수원지 둘레길의 경우 땅뫼산 황톳길을 제외하고 야자매트를 많이 깔아 원성을 산다. 대한민국맨발학교 권택환 교장은 야자매트가 정 필요하면 흙길과 함께 ‘반반 맨발길’을 조성하는 것이 요즘 추세라고 전한다. 거액의 예산을 들여 조성한 해운대수목원에서도 맨발걷기 보행로를 찾아볼 수 없다.
그러니 부산시민들은 여전히 맨발걷기에 목마르다. 부산 전체를 관통하는 계획을 세워 분위기를 한껏 끌어올릴 구심점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계속 나온다. 특정한 장소를 골라 다양한 맨발걷기가 가능한 상징적인 공간을 마련하는 대안도 필요하다. 실제 대전 계족산에는 14.5km에 달하는 황톳길이 만들어져 명성을 얻었고, 전국에서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부산에서 금정산이나 다대포 해수욕장은 보물 같은 공간으로 평가된다. 다대포의 경우 해변길과 흙길을 동시에 걷도록 조성할 수 있어 더욱 특별하다.
부산일보는 이참에 맨발걷기를 향한 시민 열망을 제대로 엮어 보기로 했다. 부산시와 부산시의회, 부산시교육청, 부산상공회의소, BNK금융그룹 등과 함께 ‘부산맨발걷기좋은도시운동본부’를 결성한 것이다. 맨발걷기국민운동본부, 대한민국맨발학교, 부산걷는길연합, 레일코리아 등 민간 단체도 손을 맞잡았다. 맨발부산 운동본부는 우선 7개 해수욕장에서 맨발로 걷는 ‘세븐비치 어싱 챌린지’를 시작하기로 하고, 오는 21일 오후 5시 해운대해수욕장에서 첫 행사의 문을 연다.
천정부지로 치솟는 물가에다 어지러운 선거판, 예측할 수 없는 기후환경까지 시민의 삶은 견딜 수 없을 만큼 팍팍하다. 시민이 건강하고 행복한 생활을 지속할 수 있도록 지금이라도 민관이 뜻과 힘을 한데 모아야 한다.
2024-04-01 [1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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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지역 기업과 ESG 경영
전 세계적으로 ESG 경영이 대두되면서 국내 많은 민간기업과 공공기관들이 ESG 경영을 강화하고 있다. 최근 유럽연합(EU)에서 ESG 수출 규제가 확대되고 있어 국내 기업들의 규제 인식과 대응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ESG란 환경(Envionment), 사회(Social), 지배구조(Governance)의 약자로, 기업 경영에서 지속 가능성을 달성하기 위한 3가지 핵심 요소를 말한다. 환경 보호와 사회적 책임, 건전한 지배 구조의 실현 등 기업의 비재무적 가치를 강조하는 트렌드다. 기후변화 등 기업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력이 증가하면서 투자자와 소비자들도 기업을 평가할 때 이러한 비재무적 가치를 중시하고 있다.
부산 지역 기업들이 점점 ESG 경영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지만, 여전히 ESG 경영 도입에는 소극적이라는 조사 결과가 있다. 부산상공회의소는 지난달 ‘부산지역 기업 2023년 ESG 등급 현황’ 보고서를 발표했다. 부산 상장 법인 39곳이 조사 대상이었는데, 이 중 74.4%가 C등급 이하의 취약한 수준에 머문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ESG 등급 상승기업이 39곳 중 15곳에 달해 전년보다 크게 늘어 고무적이란 평가를 받았다.
일부 사례이긴 하지만, 최근 취재 현장에서 만난 기업들이 ESG 경영을 활발하게 펼쳐 깊은 인상을 받았다. 대표적인 기업은 물티슈 제조 전문기업 (주)유승인네이처(부산 기장군 정관읍)이다. 이 회사 차승종 대표는 ESG 경영에 대한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있었다. 최근 소비 트렌드가 친환경 중심으로 빠르게 변화하고 있어서, 기업이 소비자로부터 인정받기 위해서는 ESG경영을 도입하고 제품에 대한 끊임없는 연구개발을 해야 한다는 것이 차 대표의 지론이다.
그는 2019년 창업 이후부터 플라스틱 원단을 대체하는 친환경 종이 물티슈 개발에 집중했다고 한다. 종이 물티슈가 생분해성이 높아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차 대표는 지난해 12월 중소벤처기업부와 창업진흥원이 주최한 ‘2023 민관협력 오픈이노베이션 지원사업’ 성과공유회에서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상을 받았다. ‘민관협력 오픈이노베이션’ 사업은 자본·기술을 가진 대기업과 가능성을 지닌 스타트업 간 협업수요를 발굴·연결하고 정부의 후속 연계 지원을 통해 기업 간 개방형 혁신을 활성화하기 위한 상생협력 사업이다. 유승인네이처는 이 사업에서 ESG 환경분야 종이 물티슈 개발 과제에 참여했다. 파트너가 된 국내 펄프 제지 전문기업인 무림 P&P와 협업을 통해 100% 천연펄프로 만든 물티슈를 세상에 내놓았다. 차 대표의 친환경 제품에 대한 끊임없는 연구와 집념이 이뤄낸 결실이었다. ‘친환경 물티슈 업계 선두 주자로서 고객과 사회에 기여하는 가치 있는 기업으로 성장하겠다’는 차 대표의 각오가 깊은 울림을 줬다.
국내 최고 수준의 가스 전문 기업인 MS가스그룹(부산 사상구 학장동)도 친환경 에너지 기술 개발과 다양한 사회공헌 활동을 통해 ESG 경영을 적극 실천하고 있었다. MS가스그룹은 일반 산업용 가스를 비롯해 특수 가스와 LPG 등 가스 전 품목을 취급하고 있다. 지난 1월 창립 50주년을 맞아 이 회사는 ‘50년의 역사를, 100년의 영광으로’라는 슬로건을 내걸었다. ‘앞으로 100년’의 방점은 ‘친환경 에너지기술 개발’이다. 현재 부산시와 암모니아 친환경 에너지 규제자유특구 연구개발 사업을 진행하고 있고, 경상남도와 암모니아 연료추진시스템 선박 규제자유특구 연구개발 사업에도 참여하고 있다. 친환경 암모니아 연료 공급 시스템 신산업 분야 육성과 해양환경 규제 강화에 따라 발 빠른 대응을 하고 있었다.
MS가스그룹 전원태 회장은 사회공헌 사업도 꾸준하게 펼치고 있다. 2011년 비영리 공익 재단법인 재기중소기업개발원을 설립해 사업에 실패한 중소기업 경영자를 대상으로 ‘재도전 힐링캠프’ 교육을 무상으로 실시하고 있다. 지금까지 13년간 총 29회에 걸쳐 460명이 수료했고 그중 60% 이상이 재기와 재창업에 성공했다고 한다. 재도전 힐링캠프는 경남 통영시 한산면 죽도의 연수원에서 매년 2회 열리고 있으며 올해도 4월과 11월에 2주간 진행할 계획이다. 심리적 상처 치유, 에코힐링, 자신감 회복, 기업가 정신 회복, 재도전 성공을 위한 사례 학습과 전문가 개별 컨설팅을 한다.
ESG 경영을 잘하는 기업이 기업 가치를 높일 수 있는 시대다. 지역 기업들이 ESG 경영을 도입해 경쟁력을 키울 수 있도록 컨설팅 지원을 비롯해 다양한 제도적·정책적 지원이 뒤따랐으면 한다. 또 기업 현장에서 실제 적용할 수 있는 가이드라인 제공도 필요하다.
김상훈 독자여론부 선임기자 neato@busan.com
2024-03-27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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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행복과 정치
‘행복하냐’는 질문에 대한 우리의 답은 무엇일까.
지난 20일은 ‘국제 행복의 날’이었다. 국제연합은 2012년 ‘행복은 인간의 목적이다’라고 규정하며 매년 3월 20일을 국제 행복의 날로 정했다. 유엔 지속가능발전해법네트워크는 이날을 맞아 각국의 국민 행복도를 조사한 세계행복보고서를 발표한다. 2021년부터 2023년까지 자료를 기반으로 한 올해 세계행복보고서 1위를 차지한 나라는 핀란드이다. 7년 연속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가 된 핀란드의 점수는 7.741점이다. 한국은 행복도 점수 6.058점으로 52위이다. 2021년 62위, 2022년 57위로 조금씩 순위가 올라가는 상황이지만 현실로는 체감이 되지 않는 것 같다. 행복이라는 주관적 감정을 점수화하는 것에 의문을 가질 수 있다. 행복은 생활에서 충분한 만족과 기쁨을 느끼는 것이다. 세계행복보고서는 삶의 만족도를 조사해 1인당 국내총생산, 사회적 지원, 기대수명, 선택의 자유, 관용, 부정부패 인식 등 항목을 기준으로 행복지수를 산출한다.
지난달 통계청 통계개발원은 국민 삶의 질 2023 보고서를 발표했다. 국민 삶의 질 보고서는 건강, 고용·임금, 주관적 웰빙, 소득·소비·자산, 시민 참여, 안전, 환경, 여가, 교육, 가족·공동체, 주거라는 11개 영역 71개 지표로 삶의 질적인 측면을 진단한다. 한국인이 현재 삶에 어느 정도 만족하는가를 보여주는 ‘삶의 만족도’는 2022년 기준 6.5점이다. 10년간 꾸준히 점수가 올랐다고 하지만 여전히 OECD 회원국 평균을 밑돈다. 2020년부터 2022년까지 한국 삶의 만족도 평균값이 5.95점으로, OECD 38개 국가 중 꼴찌에서 네 번째라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국회미래연구원에서도 한국인의 행복을 조사한다. 2023년 행복조사 결과를 보면 한국인은 ‘전반적 행복감’ 부문에서 10점 만점에 6.56점을 받았다.
이렇게 다양한 형태로 행복도 조사를 진행하는 이유는 삶의 질에 대한 사회적 요구가 증가하기 때문이다. 국회미래연구원은 행복조사 보고서에서 ‘한국은 높은 경제 수준에도 불구하고 낮은 행복 수준을 보이는 대표적인 나라일 뿐만 아니라 국가 내 행복 격차도 큰 나라이다’라고 밝히고 있다. 한국인은 왜 행복하지 않을까. 올 초 미국 작가 마크 맨슨이 유튜브에 올린 한국 방문 영상 ‘세계에서 가장 우울한 국가를 여행했다’가 화제를 모았다. 맨슨은 영상에서 유교 문화의 나쁜 점과 자본주의 단점을 극대화한 결과로 한국인들이 깊은 우울증과 외로움을 앓고 있다고 지적했다. 공동체의 붕괴, 경쟁적 사회 분위기, 양극화 심화에 경기 침체까지 더해지며 정신적 스트레스가 가중되는 상황이다. 인생역전을 꿈꾸며 사람들이 지난해 복권 구입에 쓴 돈이 무려 6조 7507억 원에 달한다는 사실에서도 팍팍한 현실을 읽어낼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정작 국민이 인간다운 삶을 영위할 수 있게 상호 간의 이해를 조정하고 사회 질서를 바로잡는 역할을 해야 하는 정치는 보이지 않는다. 정당 간 적대적 대립으로 대화와 타협이 사라졌다. 건강한 정책 논쟁 대신 서로를 향한 비난이나 막말만 오간다. 국회미래연구원이 실시한 조사에 응한 국회의원 보좌진의 약 80%가 ‘정치 양극화로 인해 국회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고 답했다. 이로 인해 정치와 정치인에 대한 국민의 불신은 더 커진다.
삶의 질 지표 중 시민 참여 영역에 ‘정치적 역량감’이라는 것이 있다. ‘나와 같은 사람들은 정부가 하는 일에 어떠한 영향도 미칠 수 없다’ ‘정부는 나와 같은 사람들의 생각이나 의견에 관심이 없다’ 항목을 통해 시민 정치 참여의 잠재적 수준을 판단한다. 스스로 정치적 역량감이 있다고 생각하는 인구 비율은 2022년 15.2%로 2013년 이후 가장 낮은 수치를 기록했다. 시민이 정치와 정책 과정에 적극 참여하고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것은 여러 의미를 가진다. 건강한 시민사회의 작동은 민주주의 발전으로 이어진다. 삶의 질이 향상될 수 있다는 기대감도 올라가고 사회 발전에 동참하는 개인의 만족도도 높아진다.
25일 〈부산일보〉에 보도된 유권자가 제안하는 총선 공통 공약을 보면 정치권이 소리쳐 외치는 이념과는 거리가 멀다. 살기 좋은 동네, 지역 경제와 문화·예술 활성화, 조속한 현안 처리 등 정책 선거에 대한 요구가 많았다. 책 〈괜찮은 정치인 되는 법〉에 정치인은 자신을 찾는 주민의 이야기를 귀담아 듣고, 그들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내용이 나온다. 정치인은 국민이 준 권력을 좋은 목적을 위해 효과적으로 사용해야 한다. 국민의 행복을 위하는 것이 정치인이 해야 할 일이며, 그런 정치인을 뽑는 것이 선거이다. 우리의 한 표가 더 많은 사람의 행복과 더 나은 내일을 일구는 씨앗이 되기를 기대해 본다.
오금아 콘텐츠관리팀 선임기자 chris@busan.com
2024-03-25 [1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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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현대차그룹 최대 실적에 대한 단상
현대차그룹은 2010년 글로벌 자동차 판매량 순위에서 5위로 입성한 뒤 성장 정체를 보였다. 하지만 2018년 정의선 회장이 경영권(당시 수석 부회장)을 맡은지 4년 뒤인 2022년 12년 만에 3위로 올라섰고 2년째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인구 5000만 명을 갓 넘고 글로벌 내수 10위 규모의 나라에 있는 한 브랜드가 이 같은 순위를 낸다는 건 불가사의다. 현대차그룹은 내수만으로는 어렵다는 판단에 결국 ‘수출’에서 답을 찾았고 호실적으로 이어지고 있다. 실제 생산 물량의 80%가량을 수출하는데, 물량이 최근 3년새 배 가까이 늘었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현대차는 지난해(별도 재무제표 기준) 매출 78조 338억 원, 영업이익 6조 6710억 원을 기록하며 역대 최고 실적을 냈다.
판매량에서 제네시스를 포함한 현대차와 기아는 지난해 총 730만 대 이상을 기록했다. 1위인 토요타가 1100만여 대인 것과 비교하면 아직 격차가 있지만 920만여 대로 2위인 폭스바겐그룹은 추격 가시권이다.
현대차와 기아가 중국에서 판매량이 대폭 줄어든 상황에서 글로벌 3위를 지켜낸 것이다. 일부에선 “이제 1~2위도 해볼만하다”는 분위기가 감지된다.
2020년 코로나19의 세계적 위기에 GM과 포드 등 완성차 업체들은 자동차 수요 급감을 예상하고 공장 가동을 중단하는 등으로 생산량을 줄였다. 하지만 현대차는 미국 등에서 생산력을 유지해 오히려 글로벌 점유율이 올랐다. 또한 부진했던 중국을 대신해 인도와 동남아시아로 과감히 눈을 돌린 것도 성과다.
자동차 업계에선 “토요타와 폭스바겐도 최근 중국 판매가 줄어들고 있고 현대차그룹은 신흥시장에서 판매량이 늘고 있어 글로벌 순위 변화가 더 오를 것”으로 보고 있다.
현대차그룹이 코로나19와 중국시장 악재에도 불구하고 글로벌 톱3에 든 주요 원인으로는 단연 정의선 회장의 리더십과 품질, 디자인이 꼽힌다.
정 회장은 최근 미국 유력 자동차 전문지 모터트렌드가 발표한 ‘올해 자동차 업계 인물 50인’에서 5위에 올랐다. 지난해엔 영향력 1위를 뜻하는 ‘올해의 인물’에 선정되기도 했다. 자동차만이 아니라 로보틱스, 인공지능(AI), 수직이착륙항공기 등 광범위한 모빌리티 사업에 대한 비전을 그리며 미래 산업에 대한 발빠르게 대처했다는 점이 긍정적으로 꼽혔다.
2022년 미국의 인플레이션감축법(IRA)으로 인해 전기차 보조금을 지원받지 못하게 됐을 때도 위기론이 나돌았다. 하지만 정 회장은 리스 등으로 눈을 돌려 오히려 미국에서의 전기차 판매 성장을 이뤄낸 것도 업계의 화제가 되고 있다.
현대차그룹의 호실적으로 달러가 국내로 많이 들어오면 국가경제 입장에선 좋은 일이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내수 20%를 맡고 있는 국민 입장에선 신차 구매 때마다 부담이 적지않다.
현대차그룹 브랜드들이 국내에서 판매하는 평균 차값이 최근 3년새 배 가량 뛰었기 때문이다. 현대차의 경우 2020년 평균 차값이 2800만 원이었지만 지난해는 5270만 원으로 뛰었다. 현대차 측은 차값이 비싼 SUV(스포츠유틸리티차량)와 제네시스 판매량 확대 때문이라고 설명하지만 전체적으로 차값이 비싸진 것은 사실이다.
국민 입장에선 현대차와 기아, 제네시스가 내수 시장 점유율 80%를 차지하는 현실에서 이들 차량이 아닌 브랜드를 구입하기란 여간 쉽지 않다. 한국GM과 르노코리아, KG모빌리티(옛 쌍용차) 등 국산 완성차는 물론이고 일부 독일차를 제외한 수입차 브랜드들이 현대차그룹의 기술력과 디자인에 미치지 못하기 때문이다.
차값이 이 같이 비싸진데 대해 국내에선 ‘노조의 고임금’ 때문이라는 인식이 팽배해있다. 일부에선 “현대차 사느니 차값이 비슷한 수입차를 사겠다”는 얘기도 심심찮게 나온다. 수입차의 경우 국내 100원에 들여오면 각종 세금 등으로 140원이 되는데, 동급 현대차가 차값이 비슷한 상황은 쉽게 설명하기 힘든 것이다. 지방에서 합판가공업을 하는 한 소상공인은 “1t 트럭을 주로 쓰는데 현대차와 기아가 이 시장을 독점한 때문인지 교체때마다 30~40%씩 차값이 올라있다”며 울상을 지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존경받는 기업 14년 연속 1위로 ‘국민기업’이 된 유한양행의 ‘안티푸라민, 크리넥스 티슈를 사면 이 회사가 좋은 곳에 쓰겠거니…’ 하는 생각이 들듯, 현대차를 사도 편한 마음이면 좋겠다. 이제 더이상 현대차가 ‘욕하면서 사는 차’가 아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2024-03-20 [17: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