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의 오르세? 옛 부산진역에 시대 작가 6인 모였다

김효정 기자 teresa@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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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까지 동구문화플랫폼서
상지건축 창립 50주년 기념전
‘21세기 동시대 미술 in 부산’
대형 미술관 전시 못지 않아

김준권 ‘산운’. 상지건축 제공 김준권 ‘산운’. 상지건축 제공

올해 창립 50주년을 맞은 상지건축은 한국 유수의 건축 기업이다. 부산을 본거지로 둔 기업으로 건축 분야에서 최고 기술력과 전문력을 인정받고 있다. 그에 더해 상지건축이 차별화되는 지점이 또 있다. 건축 기업이지만 인문학 분야에 탁월한 성과와 실천을 이어오고 있다.

2015년 시작된 상지인문학아카데미를 비롯해 청소년 인문학 특강, 인문학 무크지 발간, 시민 특강, 영화와 미술 시리즈에 이르기까지 시민을 대상으로 다양한 인문학 강좌를 열었다. 국내 최고의 강사를 섭외하고 자료집까지 만들지만 모두 무료로 진행한다. 심지어 강의에 참여하지 못한 이들에게도 인문학을 알리기 위해 상의를 따로 모아 책을 내기도 했다.

허동윤 상지건축 회장은 “인문학의 관점에서 세상과 부산을 공부하다 보면 급변하는 시대에 어떻게 살 것인지, 부산이 어떻게 나아가야 하는지 등에 대한 나름의 해결책을 사람들이 찾게 되지 않을까 싶었다"고 설명한다.

지난 26일 개막해 5월 17일까지 동구문화플랫폼(옛 부산진역사)에서 이어질 ‘21세기 동시대 미술 in 부산’ 전시는 이 같은 상지건축의 인문학 사랑을 제대로 확인하는 자리이다. 제목 그대로 이 시대를 대표하는 유명 작가 6명(김준권, 정철교, 정희욱, 노주련, 박건, 진영섭)의 작품을 부산 시민들이 직접 볼 수 있도록 마련했다. 김준권 작가를 제외하고는 모두 부산 출신이라는 점에서 이번 전시가 가지는 의미는 남다르다.

사실 이 정도 유명한 작가들의 작품을 한자리에 모으는 건 쉽지 않다. 대형 작품이 많아 장소를 구하는 것부터 작품을 운반하는 과정, 전시를 어떻게 펼쳐야 할지 기획까지 비용이나 전문 인력까지 고려해야 할 사항이 많기 때문이다. 대형 미술관이나 박물관에서 가능할 것 같은 전시가 성사된 건 상지건축덕분이다. 상지건축이 50주년을 맞아 부산 시민에게 건네는 선물인 셈이다.


김준권 ‘보리밭’. 상지건축 제공 김준권 ‘보리밭’. 상지건축 제공

한국 판화계의 역사라고 불리는 김준권 작가는 우리 민족의 정서를 가장 잘 표현하는 심미적 대상으로 백두대간을 선택했다. 흑백의 수묵 목판화와 채색의 채묵 목판화로 제작된 산 시리즈는 전통 산수화의 맥을 잇듯 깊은 여백의 맛이 느껴진다. 전시에선 2미터에 이르는 대형 산 작품과 청보리밭이 눈이 시원해질 정도로 기분 좋게 다가오며 80년대 민중 미술에 바탕을 둔 강한 느낌의 초기 작품부터 2023년 최근작까지 모두 만날 수 있다.


정철교 ‘신암리 마을정경’. 상지건축 제공 정철교 ‘신암리 마을정경’. 상지건축 제공

정철교 ‘자화상’. 상지건축 제공 정철교 ‘자화상’. 상지건축 제공

자화상 연작과 원전마을 풍경화 연작으로 동시대 삶을 보여주는 정철교 작가. 정 작가 특유의 붉은 색과 노란색의 작품은 순간적으로 작품 속에 빠져드는 착각이 들 만큼 몰입감이 대단하다. 미술관이라는 화이트 큐브 공간을 넘어 원전마을의 병원, 우체국, 횟집 등 일상 삶의 공간에 작품을 전시하며 삶 속에서 예술을 구현하는 작가이다.


정희욱 ‘자소상’. 상지건축 제공 정희욱 ‘자소상’. 상지건축 제공

정희욱 ‘무제’. 상지건축 제공 정희욱 ‘무제’. 상지건축 제공

40년 넘게 인간의 두상을 파고들며 조각을 해온 정희욱 조각가. 그의 중요한 모든 작품은 돌로 만든 얼굴 연작이다. 정 작가는 조각을 좌대 위가 아니라 바닥에 그대로 둔다. 그의 얼굴 조각은 동시대의 목소리를 듣고, 동시대 인간들의 삶을 응시하는 토대가 되는 것이다. 정 작가 조각 앞에 서면 마음이 푸근해진다. 마음속 이야기를 꺼낼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에 빠지는 건 예술이 주는 위로일 것 같다.



노주련 ‘오픈 미러 큐브’. 상지건축 제공 노주련 ‘오픈 미러 큐브’. 상지건축 제공

노주련 ‘레인보우 골드 큐브’. 상지건축 제공 노주련 ‘레인보우 골드 큐브’. 상지건축 제공

어린 시절 딱지에 관한 추억을 다양한 작품 속에 담아내는 노주련 설치미술가. 삶과 죽음, 사랑의 문제 등을 자신만의 언어로 표현한다. 노주련을 대표하는 거대한 큐브 설치물에 작가의 사유를 풀어놓는다. 숨 쉬는 듯 움직이는 큐브와 영상을 보며 작가가 해석한 삶에 대한 진솔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박건 ‘너무오래돌았어 2024 벽시계’. 상지건축 박건 ‘너무오래돌았어 2024 벽시계’. 상지건축

박건 ‘파란씨-검은새 2023’. 상지건축 제공 박건 ‘파란씨-검은새 2023’. 상지건축 제공

작은 사물과 장난감에 시대 메시지를 전달하는 박건 작가. 유쾌한 표현 방식에 웃고 허를 찌르는 메시지에 놀라게 된다. 자유와 존엄성, 권력 비판, 인간 소외, 생태계 파괴, 자유로운 소통, 나눔과 연대 등에 대해 말하고 있다.


진영섭 ‘소풍’. 상지건축 제공 진영섭 ‘소풍’. 상지건축 제공

진영섭 ‘마음 속의 망고 나무’. 상지건축 제공 진영섭 ‘마음 속의 망고 나무’. 상지건축 제공

차가운 금속에 따뜻한 에너지와 생명력을 불어넣는 진영섭 금속공예가. 전통을 계승하면서 현대적인 감각을 잘 살리는 작가이다. 예술은 삶과 함께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감천문화마을 커뮤니티 아트 등 공공미술 프로젝트에도 적극 참여했다. 이번 전시에선 물고기 시리즈와 사과 시리즈 등을 만날 수 있다.

김종기 비평가는 “전시에선 여섯 명 작가의 작품세계를 현대 철학과 시대적 흐름, 미술의 경향을 통해 설명하고 있다. 동시대 미술을 통해 어쩌면 지금의 나와 우리를 발견하는 지점이 있을 것”이라고 소개했다.

전시장 2층에는 ‘부산남항 재창조 프로젝트’ 전도 열리고 있다. 1전시실은 1876년 부산항 개항 이후부터 현재까지 부산항(북항과 남항)의 공간을 사진, 도면, 문서 등 역사 사료를 모았다. 2전시실에는 동의대 건축학과 학생들의 남항 미래 모형, (주)상지엔지니어링건축사사무소와 경성대학교, 한국해양대학교가 함께 한 부산 남항의 과거와 현재, 미래 재창조 연구 결과를 볼 수 있다.


김효정 기자 teresa@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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